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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영접은 그리스도인의 임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1-02 22:57
조회
210

손봉호 ((사)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명예 이사장), 전 (사)국제민간교류협회 이사)


‘은둔자의 나라’로 알려졌던 한국에 외국 노동자, 기술자, 유학생, 난민이 찾아오고 다문화 가정이 생겨나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다. 외국인이 전체인구의 5% 이상이면 다문화 사회라는데 한국에는 이미 거의 7%나 되고, 국민 60%가 한국은 다문화 사회란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후진국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민 가는 나라에서 이민 오는 나라로 발전한 것은 충분히 자축할만하다.

그러나 한국인 대부분은 아직도 나그네들을 제대로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직도 외국인들을 ‘우리’의 태두리 안으로 품는 것에 어색하고,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외국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 기업인들이 없지 않고 정부는 난민 인정과 수용에 매우 인색하다. 상당히 넓은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의 지형, 오래 계속된 관계 중심의 전통문화, 그리고 빈번했던 외세의 침략 등이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서먹서먹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문화 현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가 많으므로 하루빨리 이런 주저와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피차에게 유익하다.

그런데 이런 통합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설 위치에 있고 앞장서야 할 의무가 있다. 이미 그리스도인들은 외국인을 가장 먼저 그리고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선교사들을 통해서 복음을 받았으므로 그 복음을 전해 준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선교사들을 통해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외국 문물과 빨리 그리고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우리 자체의 해외선교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생소한 피선교국 주민들과도 직·간접적으로 빈번히 접촉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일반 국민들보다 이미 더 개방적이며 나그네들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있다.

거기다가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원칙적으로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대상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민족, 지역, 성, 피부색,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들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고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그네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신의 도성>에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peregrini)란 사실을 특히 강조했고 존 번연(John Buyan)의 <천로역정>도 기독도를 순례자(pilgrim)로 서술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인 상당수도 전 세계에 흩어져 나그네로 살고 있다. 800만 명에 가까운 한인이 186개국에 이민 갔거나 거주하고 있어, 체류국 수로는 중국인의 180개국보다 더 많다 한다. 탈북민들은 다른 외국인과는 다르지만 역시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나그네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나그네들을 잘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할 대상은 고아, 과부, 객이었는데, 객이란 바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끼어 사는 이방인들이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을 특별히 보호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들을 보호해 줄 부모, 남편, 동족이 없는 약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국가가 법과 제도로 이들의 기본 권리는 보호해 주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나그네들이 쉽게 소외되고 외로우며 각종 음성적인 가해와 차별대우를 쉽게 당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나그네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리 사회에서 나그네 된 사람들을 특별히 보호하고 위로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나그네들이 모인 교회만큼 이 땅의 나그네가 안식할 곳은 없지 않나 한다.

나그네는 고향에서 떠나므로 ‘뿌리가 뽑힌’(uprooted) 사람들이다. 그 뿌리에는 종교적인 전통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뿌리가 뽑힌 사람들은 새로운 신앙을 수용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아브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도 그가 이방 우상을 섬기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였다. 선교지로서 시골보다 도시에 전도가 쉬운 것도 뿌리가 뽑힌 시골 사람들이 도시에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단순히 전도만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지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전도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교회의 당연한 임무다.

나그네들이 한국 사회에 조화롭게 적응해서 소외되지 않고 차별받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비록 소득 격차가 심하지만, 아직도 미국이나 유럽의 어떤 나라들처럼 사회계층이 뚜렷하게 고착되어 있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고착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요즘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하는데 이것이 이어져서 소외계층으로 고착되는 것은 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 전체의 불행이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은 나그네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위해서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그네들의 조화로운 정착은 한국 교회의 도전이며 임무가 되었다. 부디 그 임무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손봉호 ((사)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명예 이사장) (사)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명예 이사장이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외대, 서울대 교수를 거쳐 동덕여대 총장과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을 역임했다. 도산인상, 국민훈장 모란장, 서울대 사회봉사상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고신대 석좌교수, 기아대책이사장으로도 섬기고 있다.

 

*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발간 '신앙과 삶' 2021년 11-12월호 에서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