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주민정보

인종주의 확산과 ‘국가없음’ -김현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8-01 22:43
조회
6966

인종주의 확산과 ‘국가없음’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이주여성인권포럼)


1. 다문화사회로 이동하는 한국의 ‘인종주의’


한국도 ‘이주의 시대’의 새롭게 부상하는 이주 목적국이 되었다. 불과 30년 전 만해도 한국은 사람을 해외로 내보내는 송출국이었다. 1903년 한인들의 첫 해외 이주인 하와이 이민이 시작된 이래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726만8천명이 전 세계 176개국에 살고 있으며, 이 수치는 세계 평균 3퍼센트보다 훨씬 많다. 한국은 이스라엘, 아일랜드,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로 자민족국민을 해외로 많이 송출한 나라다.1)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인종, 국적, 언어가 다른 외국인 이주자의 유입의 증가다. 행정안전부의 2012년 외국인주민현황분석에 따르면, 외국인 주민의 수는 140만 9,577명으로 총 주민 등록 인구 5천94만8272의 2.8%, 약 36명 가운데 한명이 외국인 주민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체 인구에 비해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런 변화가 최근 20년간 급작스럽게 일어났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 주는 반향은 매우 크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급증한 외국인 취업자나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다문화’란 말이 일상적 언어가 되고 있다. 단일문화를 강조했던 한국에서 ‘다문화’ 사회란 말이 등장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런 변화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만큼 ‘반 다문화담론’이란 이름의 외국인 혐오주의가 등장하고 다문화란 말이 철학이나 비전 없이 남용되는 상황 또한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한국사회는 이주자의 존재로 많은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무엇보다 견고한 국민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이주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우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었다.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한국인’이란 개념 또한 새롭게 재 정의되고 있다. 실제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단일문


화주의를 신봉한 사회였다. 영토적 귀속성, 순혈주의, 단일 언어주의라는 세 가지 원칙하에 구성되는 한국인의 정의는 통합된 국민 정체성의 기반을 마련해주었고, 궁극적으로 한국인의 단결력, 빠른 경제 발전과 사회 변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한국인 내부의 ‘차이 없음’은 사회적 갈등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은 의도적으로 단일민족주의의 신화를 강조해왔다. 한국인 내부의 젠더, 지역, 계급, 세대 등의 차이에 따른 다양성을 ‘분열’로, 의견의 차이를 ‘당파성’으로 이분화시킬 뿐만아니라 둘 간의 감정적 ‘적대’를 강화해왔다. 이런 사회문화적 토양에서 급증하는 외국인은 불안하고 불예측적인 사회적 장소에 위치하면서 상상적 동질성에 기반을 둔 ‘한국인’의 인종주의적 적대의 쉬운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인종주의는 유색인종 한국인이 다른 유색인종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인종주의의 깊은 역사와 이에 따른 전쟁, 대량학살, 혁명을 경험한 서구사회에서 인종은 집단적 상흔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이며, 가장 금기시되는 언어이다. 단순히 외형적 인종이란 지표 때문에 적개심을 표출하는 것은 가장 야만적인 형태의 폭력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은 인종에 의거한 차별을 만들어내는 행위자 또는 가해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전히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이미 지난 역사를 들춰내는 행위이며, 또한 인종으로 구분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믿음도 강력하다. 이 때문에 인종주의는 현대 정치 운동에서 ‘쉬쉬’하는 주제가 되고 있다.


현대 한국사회의 인종차별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인종적 사고와 이주민의 존재를 ‘경험’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양상이다. 이주민의 존재를 통해 다양한 ‘증거’와 사례들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과장함으로써, 질문되지 않고 용인되었던 인종적 편견과 인종적 사고가 다양한 폭력을 통해 정당화되고 있다. 인종에 따른 차별은 가장 금기시되는 ‘차별’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을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질 수 없는 것 또한 한국적 특수성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한국 사회의 역사적 상흔과 현대 한국의 글로벌경제 성장에서 오는 유사 제국주의적 정신 상태 등이 묘하게 결합된 정서적 구조 안에서 태동되는 것이므로 하나의 원인, 하나의 해결, 하나의 대안이 있을 수 없고, 복합적인 권력의 결합과 복잡한 ‘정서’의 영역을 포함한다.


2. 인종화로서의 ‘다문화’ 표식


마일즈는 인종화(racialization)는 '인종'이라는 사고의 역사적 발현과 그 이후의 적용 및 재생산을 뜻한다고 주장하면서, 차별화된 사회적 집합성을 구조화하고 정의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을 두고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낸 범주화 프로세스로 정의 내린다.2) 그러나 인종화과정은 ‘신체적 특징’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담론적, 문화적 과정이기도 하다. 인종 구분과 유사한 의미와 가치를 환기시킴으로써 인종화의 과정은 소수 집단을 인종에 결부시켜 표시하고 낙인찍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인종주의적 메타포를 적극 차용함으로써 인종주의를 환기시켜내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 즉, 한국의 다문화가족이나 다문화가족 아동에 대한 담론도 일종의 ‘인종화’ 담론이라 해석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국제결혼의 급증으로 가족 내 문화적 혼종화에 대한 우려가 생겼고, 국제결혼가족의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국정부는 국제결혼가족을 '다문화가족'이라 명명하고 2006년이후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공고화했다. 문제는 2006년 이후 본격화된 다문화정책은 ‘법적 지위’가 확실한 통합의 필요성이 있는 결혼 이주자들만을 정책대상으로 설정해 왔다. 즉, 다른 이주자들에 대해서는 필요한 노동력은 얻되 이들을 사회구성원으로 통합하는 데 비용을 들이지 않는 정책을 추구해왔다. 정부의 다문화정책은 “주류 한국인이 기획하고 이주민은 선별적으로 호명하되 정해진 역할과 입지로 배치되는 사회”를 구성해냈다3). 한국의 다문화담론은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정책과 ‘구별’되지 않은 채,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담론의 태동은 이주자 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원래 한국사회에서 다문화주의란 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시민사회와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NGO 등을 통해서였다. 이주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인권과 노동권을 요구했지만 한국 사회의 인종 차별 때문에 이 운동은 사회 전반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다문화 인권을 주도해야 할 주요 행위자인 이주자의 체류권 등 법적 지위의 한계 때문에 광범위한 ‘문화’ 투쟁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이주지원 단체와 시민사회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다문화주의 또는 문화 다양성은 그것이 일반적으로 내포하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상호인정과 승인의 의미보다는 한국인의 외국인 차별과 폭력성에 대한 대항적 개념이었다. 단일민족에 기반을 둔 국민주의가 만들어 내는 인종, 성, 계급 등 에 기반을 둔 다양한 폭력들을 통해 이주노동자, 혼혈인, 결혼이주자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됐기 때문이다. 이 때 다문화주의 또는 다문화 담론은 한국 선주민의 ‘반성’과 ‘성찰’을 요청하는 담론이었다. 그러나 다문화 담론이 국가에 의해 ‘차용’되면서 철학적 실체 없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고, 급기야 다문화 담론은 정착형 이민자인 결혼이주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담론으로, 귀결 또는 협소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다문화담론은 이민국가로의 불안을 관리하는 제도로 등장하면서, 선주민에 대한 교육이나 의식화에 무관심했다. 최초의 정착형 이민자인 결혼이주자를 한국 가족과 사회 내에 편입시키기 위한 빠른 동화를 통한 한국화라는 목적에 얽매이다 보니 ‘다문화가족’ 정책으로 환원되었고, 이 정책은 다문화가족 전체를 '취약계층'과 동일시하면서 영구적인 주변부 계급으로 고착화시키는 문화적 폭력도 만들어냈다. 다문화가족은 정부의 복지 공약 남발의 대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쉬운 대상으로 선택되었고, 궁극적으로 선주민과의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교류의 장을 갖지 못한 채 최근에는 외국인 혐오의 대상으로 상징화되는 상황을 낳았다.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며 일터나 삶터를 다문화적 인권/노동권/거주권이 관철되는 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 국가의 문화이데올로기로 변질된 ‘다문화담론’은 이주자에게 시혜를 베풀고, ‘구제’해야 한다는 선주민의 우월의식을 고양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3. ‘반다문화’ 담론의 성격과 확산


한건수의 지적대로, 한국에 확산되는 ‘반다문화’ 담론과 정치적 행동은 한국 정부가 다문화주의 정책을 ‘제대로’ 추진해보지도 못했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여론 주도층이 다문화주의적 가치를 계몽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4) 이는 관용구로 사용되는 ‘다문화’에 대한 혐오증이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이주민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었기 보다는 각종 미디어와 여론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상상력’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으로 ‘생존’의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다문화가족과 이주민에 대한 ‘퍼주기식’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현실 인식은 사람들의 반감을 낳게했다. 외국인과 ‘공정한’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외국인은 ‘소유물’이나 ‘값싼 노동력’이상의 위엄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 상상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결혼 실패나 일자리를 놓고 외국인과 경쟁하는 상황은 선주민들에게 새로운 분노를 초래했는데, '신분'이 역전되는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경제제일주의 원칙과 한국의 글로벌한 위상에 대한 자부심으로 경제 개발국 아시아 시민들과의 위계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왔던 일부 한국인이 보이는 인종주의는 ‘반다문화’ ‘반외국인’ 운동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다문화정책반대’, ‘다문화바라보기 실천연대’,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 ‘단일민족 코리아’ 등의 사이트들은 반 다문화 및 외국인 추방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반 다문화 담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 국제결혼, 조선족 가사도우미, 외국인 범죄로 인한 한국인의 피해 강조


2) 서민들의 경제난 가중: 이주민이 일자리를 잠식하고 저임금 체제를 지속시키면서 서민들의 경제난을 가중시킴


3) 국가안보 위협: 미등록이주자와 같은 범죄자를 방조함으로써 범죄가 만연하고, 폭동이 일어나 국가안보가 위협받음. 국민의 인권침해로 이어짐.


4) 민족말살: 다문화정책은 이주민을 ‘우대’함으로써 한민족을 차별하고 결과적으로 한민족을 말살하는 정책임


5) 유럽 우파 지도자들의 다문화정책 포기 및 실패 선언을 강조함으로써 ‘보편적 추세’로서의 반이주자 정책을 정당화함.


문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다문화담론을 유포하던 조직들이 정부의 공청회나 학계의 학술대회, 각종 집회에 참가하면서 그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고, 정책 자문회의에도 초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이주민 정책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전문가 집단으로 인정될 뿐 아니라, 한국인의 내면화된 인종주의를 ‘공론화’시키고 있다. 즉, 적대, 혐오, 낙인, 증오에 기반을 둔 담론이 '범죄'라기 보다는 일종의 정보, 전문성,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을 대한 제제나 처벌도 없고, 문화다양성에 대한 존중 교육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인종차별주의는 확산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반다문화담론은 ‘신인종주의’의 표현이다. 신인종주의는 적대가 ‘인종’에 기반을 둔 차별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는 것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8) 문화는 민족과 국가 정체성의 원천이므로 자신의 ‘문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하면서 이주자의 추방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4. 인종주의 확산과 ‘국가없음’


한국에서 왜 인종주의는 확산되고 있을까? 버틀러(J. Butler)와 스피박(G. Spivak)의 대담에서 개념화된 ‘국가 없음’의 의미를 떠올려보자.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전 지구적 ‘관리국가’는 국민국가 내의 재분배, 복지, 그리고 헌법주의에는 관여하지 않고 전 지구적 자본의 유통을 위한 관리자 역할만을 수행하려고 한다. 이는 국민국가 내에서 국가가 국가의 기능을 하지 않는 ‘국가 없음’의 상태를 만든다. ‘국가없음’이란 민족이나 국민 같은 호명에 의존하면서 특정 주체들은 국가에 적법한 주체로 엮지만, 사회 주변부나 이주자처럼 다른 주체들은 적극적인 권력의 행사를 통해 국가 밖으로 내치고 추방하여 권리를 박탈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국가 없음’은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재분배와 복지 기능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국민마저도 ‘국가 없음’의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시장에 많은 것을 양도한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기 정당성과 권위를 확보하는 방법은 국가가 가진 문화적 이데올로기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가는 신자유주의 시대 개인이 가진 경제적 불안이나 사회적 지위 하락에 대한 공포 등의 상태에 있는 국민들의 삶에 장기적인 안목과 기획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자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바우먼은 신자유주의 기획 하에서 안전과 안보의 개념이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국내 출신 하층계급과 불법이민자들을 잠재적인 내부의 적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동시에 국가는 선량한 국민을 철저하게 보호하겠노라는 약속을 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해나간다.10) 국가가 복지 정책에서 후퇴할수록 여전히 국가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보와 치안을 강조하는 문화적 논리는 강화된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이러한 점에서 여전히 ‘부권적 권위주의’의 성격을 지닌다. 즉 개인화된 자유를 낭만화하고 작은 국가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달리, 강하고 보호주의적인 국가를 상정하려고 한다. 통치자는 항상 ‘서민’을 걱정하고, ‘서민’을 먹여 살리는 문제를 고민하는 가부장의 모습으로 자신을 재현한다. 이러한 통치체제는 1970년대의 유교적 부권주의의 문화적 모델과 신자유주의적 모델을 결합시켜, 시민들의 일이나 복지 등의 적극적인 생존권에 대한 물적 보장은 제공하지 않은 채 이들을 단지 온정주의적 대상으로 남겨두고 있다. 국가가 영토 구분이 희미해지는 글로벌 경제 체제 하에서 자국의 경제적생존을 위해 민족주의와 민족 담론이 강화되고 있는 것 또한 신자유주의에서 일어나는 주목할 만한 현상


이다. ‘국가없음’의 상황은 국가에 대한 저항과 도전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전통적 공동체로의 회귀를 조장한다. 국가는 ‘안보’개념이나 반 이민자 정서의 조장을 통해 내부를 단결시키며 국가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정치 문화적 환경에서 이주자는 ‘값싼 노동력’이라는 도구적 관점으로만 평가되고, 여전히 이주자는 ‘국익에 위배되는’ 잠재적 위협인물로 규정된다. 경제위기와 고실업의 원인을 이주자 탓으로 돌리며 외국인 혐오를 부추 키거나 ‘불법’이주자로 범주화하여 인간에 대한 착취를 영속시키는 자본과 국가의 모습은 매우 익숙한 광경이 되고 있다.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외국인 혐오나 반다문화 담론 또한 국가의 방관과 방치 하에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이후 가중되는 사회적 추락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타민족과 외국인에게 전가하는 반다문화담론과 인종주의는 양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불안을 ‘반-이주민 정서’로 추동해내는 우파 보수주의 정권의 득세 또한 이주의 정치화를 가속시킨다. 한국 정치 문화 환경의 급속한 퇴행은 신자유주의적 우파 정치와 그 불만 또는 동조 세력이 묘하게 결합하면서 이주자와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폭력을 방관하거나 양산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바우만의 말대로 지난날의 ‘부재지주’처럼 권력을 갖되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에 관여하거나 예속되지 않는 정치-자본가 세력은 ‘문화적 세뇌’라는 지배제체를 통해 인권, 평등, 민주, 개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고11), 대신 그 자리에 냉전 이데올로기의 공포와 글로벌 ‘대한민국’이라는 축제 분위기를 끼어놓고 있다. 정치적 공론장인 ‘아고라’는 사라지고, 폭로와 증오의 디지털 네트워크는 확장적 자기 증식을 한다. 이 때 기본 인권도 갖지 못한 이주자는 쉬운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질서는 불안정성, 불확정성, 불안이란 거대한 구조를 일상화시키지만 사회적인 모순과 위험을 해결할 의무와 필요를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남겼다. 신뢰, 참여와 헌신, 협상과 조정이라는 룰에 의해 관리되어야 할 공적 소통의 영역은 적대와 혐오로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확실성과 안정에 대한 갈망은 대다수의 한국인을 익숙하고 전형적인 ‘자민족중심주의’로 회귀하게 만든다. 자민족 중심주의는 내부의 갈등을 무화시키고 동질성의 신화에 의존한 인종주의의 한 표현이며, 이때 외부의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폭력을 수반하면서 강화된다. 애국심이나 국가 지키기로 포장된 반외국인, 인종주의적 담론은 무개입적, 무비판적 사회 환경에서 증폭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에대한 인과적 질문을 포기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주자는 모든 사회, 경제, 안보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들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이주자들의 취약한 위치 때문에 응수적 저항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수위를 높여간다.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의 확산은 이주자의 '무권력' 상태를 지속시키는 요인들, 즉, 혐오범죄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부재, 교육과 미디어에서의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 부재,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개입 부재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